첫째 교리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범죄하여 저주 아래 있고 영원한 죽음을 받아 마땅하므로,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죄와 저주 아래 남겨 두시고 그 죄로 말미암아 정죄하시기로 뜻하셨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불의를 행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사도의 말에 따른다.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롬 3:19). 그리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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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람을 이렇게 나타내셨으니,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사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요일 4:9; 요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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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람들을 믿음으로 데리고 오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시게 그분이 뜻하시는 사람에게 그분이 뜻하시는 때에 이 지극히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자들을 보내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봉사를 사용하셔서 사람들을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라고 부르신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롬 10: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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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다.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이고 참되고 살아 있는 믿음으로 구주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에서 건지심을 얻고 영생을 선물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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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믿지 않는 원인 또는 믿지 않는 죄에 대한 책임은, 다른 모든 죄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하나님께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이는 기록된 대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그를 믿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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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시간 안에서 어떤 이들에게는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어떤 이들에게는 주시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에서 나온다. 이는 “영원부터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행하시는 모든 일을 아시며”(행 15:18),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엡 1:11)시기 때문이다. 그 작정을 따라,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의 마음이 아무리 완고해도 은혜로 부드럽게 하시고 믿음으로 기울게 하신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가 아닌 사람들을 그분의 심판으로써 그들 자신의 악함과 완고함 가운데 남겨 두신다. 바로 여기에서 특별히 우리에게 깊으시고 자비로우시며 동시에 공의로우신 구별이 파멸에 똑같이 연루된 사람들 사이에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 안에 계시하신 선택과 유기의 작정이다. 패역하고 더러우며 정함이 없는 사람들은 이 작정을 왜곡하여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반면, 거룩하고 경건한 영혼들에게 이 선택과 유기의 작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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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은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뜻(계획)으로 그 뜻에 의하여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원래의 흠 없는 상태에서 타락해 죄와 멸망에 빠진 모든 인류 가운데서, 그분의 주권적인 선하신 기쁘심을 따라, 순전히 그분의 은혜에서, 본성상 다른 이들보다 나은 것이 없고 좋은 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으며 다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한 비참에 다 같이 빠져 있었던 확정된 특정한 사람들을, 영원 전에 택하신 자들의 중보자와 머리 그리고 구원의 기초로 임명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택하신 자들을 그리스도에게 주시기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시기로, 그리고 그분과의 교통 안으로 그분의 말씀과 성령으로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이끄시기로, 그들에게 참된 믿음과 의롭다 하심과 거룩하게 하심을 주시기로, 그리고 능력으로 역사하사 그분의 아들과 더불어 교제하게 하심 가우데 보전하시어, 마지막으로 영화시키시기로 작정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내며 또한 그분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는 기록된 대로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또한 기록된 바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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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선택의 작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옛 언약과 새 언약 아래에서 똑같이, 구원받을 모든 사람에 대한 단 하나의 동일한 작정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선하신 기쁘심과, 계획과, 뜻의 결정이 하나이며 그것을 따라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우리가 은혜와 영광에 이르도록, 또한 우리가 구원받고 동시에 우리가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고 예비하신 구원의 길을 따르도록 선택하셨다고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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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택은 미리 내다보신 믿음, 믿음의 순종, 거룩함, 기타 사람에게 있는 어떤 선한 자질이나 기질에, 선택받기 위해 필요한 선수 여건이나 원인 또는 조건으로써 기초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 믿음을 가지도록 그리고 믿음에서 나온 순종을 하도록, 거룩하도록 등을 위해 선택되었다. 따라서 선택은 모든 구원의 선의 원천이며, 선택에서 믿음과 거룩함과 다른 구원의 은사들, 그리고 최종적으로 영생 자체가 선택의 열매와 효과로 흘러나온다. 이는 사도의 증거와 같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이지 그렇게 때문에 택하신 것이 아니다)”(엡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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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하신 기쁘심이 은혜로운 선택의 유일한 원인이다. 이 선하신 기쁘심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든 가능한 자질이나 행위 가운데 어떤 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정하시는 것에 있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공통된 죄인의 무리 가운데 특정한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에 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 9:11-13). 또한 “영생을 주기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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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자신께서 지극히 지혜로우시고 일정하시고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신 선택은 결코 중단되거나 변경되거나 폐지되거나 철회되지 않는다. 택하신 자들은 버리심을 받지 않으며, 그 수가 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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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하신 자들은 하나님의 때에 자신들의 영원하고 변함없는 선택에 대하여 비록 단계가 다양하고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확신을 얻는다. 이 선택의 확신은 하나님의 비밀스럽고 깊고 오묘한 것들을 호기심으로 파고들어 감으로써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에서 가리켜 보이신 틀림없는 선택의 열매들, 즉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믿음, 자녀로서 갖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 죄에 대한 거룩한 슬픔, 의에 목마르고 굶주림 등과 같은 것들을, 영적으로 기뻐하고 거룩히 즐거워하며 자신들 안에서 관찰함으로써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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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신들이 택하심을 입었음을 깨닫고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 앞에 매일 겸비하고, 그분 자비의 깊이를 찬송하며,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그분께 감사하며, 그토록 크신 사랑을 먼저 자신들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께 열렬한 사랑을 돌려 드릴 더 큰 이유가 된다. 이 선택 교리와 이 교리를 묵상하는 것이 결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데 나태하게 하거나 육적인 평안함에 잠들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으로서, 분별없이 선택의 은혜를 받았다고 여기거나, 이 은혜에 대해 무익하고 뻔뻔스럽게 이야기하며, 택자가 걷는 길로 행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보통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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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나님의 선택 교리를 하나님의 지극히 지혜로우신 뜻을 따라, 새 언약과 옛 언약 아래에서 모두, 선지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직접, 또 사도들이 선포했으며, 이어 거룩한 성경에 기록하라 맡기셨다. 따라서 지금도 여전히, 이 교리를 선포하는 곳으로 특별히 정하신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분별의 영으로, 경건하고 거룩한 방식으로, 적절한 때와 장소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의 비밀한 길을 호기심을 캐내려는 태도가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이름이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살아 있는 위로를 위하여 이 교리를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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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 영원하며, 우리 공로가 없음에도 주시는 은혜를 가장 두드러지게 그려 내고 우리에게 그 가치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은 거룩한 성경이 다음과 같이 선포할 때이다. 모든 사람이 택하심을 받은 자가 아니며 어떤 이들은 택하심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택에서 지나쳐 버리심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지극히 주권적이시고 공의로우시고 흠잡을 수 없으시고 변하지 않으시는 선하신 뜻에서, 그들을 스스로 자신을 던져 넣은 그 공통의 비참 가운데 남겨 두시기로, 또 그들에게 구원받는 믿음이나 회심의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기로, 그들을 자신들의 길과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 아래 남겨 두신 뒤, 마지막으로 그들의 믿지 않는 죄뿐 아니라 또한 다른 모든 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시기 위하여, 그들을 정죄하시고 영원히 멸망하게 하시기로 작정하셨다. 이것이 유기의 작정이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만들지 않으며(이런 생각은 끔찍한 신성모독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우시고, 흠잡을 수 없으시며, 정의로우신 심판자이시자 보응하시는 분으로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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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에 대한 살아 있는 믿음과, 확신에 찬 영혼의 신뢰, 양심의 평안, 자녀로서 순종하려는 열렬한 노력,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 등이 자신 안에 효과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아직 분명히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통해 이러한 은혜를 우리 안에 역사하시기로 약속하신 방편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유기에 대한 언급에 결코 놀라거나 자신을 유기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계속해서 방편들을 부지런히 사용하면서, 풍성한 은혜의 때를 간절히 원하며, 경외함으로 겸손히 그때를 기다려야 한다. 더욱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며, 사망의 몸에 서 건져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아직 경건이나 믿음의 길 위에서 자신들이 갈망하는 만큼 이르지 못한 사람들은 유기 교리에 놀랄 이유가 앞의 사람들보다 더 적다. 이는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리라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전혀 상관하지 않으며 세상의 염려와 육신의 즐거움에 자신을 전부 내어 주는 사람들은, 진지하게 하나님께로 회심하지 않는 한, 이 교리를 두려워함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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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말씀으로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믿는 자의 자녀는 그 본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은혜로운 계약으로 인하여 그 부모의 믿음을 따라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경건한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이 거룩한 믿음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자녀들이 택함을 받아 구원되었다는 사실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창 17:7; 행 2:39; 고전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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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값없이 주시는 선택의 은혜와 공의로우신 유기의 엄위하심에 대하여 불평하시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사도를 따라 이렇게 답한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롬 9:20)? 또한 우리 구주의 이 말씀을 인용한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마 20:15)? 따라서 이 신비들을 경외함으로 찬양하며 우리는 사도와 함께 외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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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논박

선택과 유기에 대한 참된 교리를 설명한 총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는 이들의 오류를 거부한다.

오류: 믿을 뿐 아니라 동시에 믿음 안에서 그리고 믿음의 순종 안에서 인내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길 원하신다는 것이 구원받도록 택하신 작정의 모든 것이며 전부이다. 그리도 이것 말고는 이 작정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타난 것이 전혀 없다.

논박: 이 주장은 순진한 자들을 미혹하며 명백히 성경을 거스른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믿을 사람들을 구원하신다고 선포할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특정한 사람들을 선택하시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니 주시고 그들에게만 시간 안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인내 모두를 주실 것이라고 선포한다. 이는 기록된 대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 17:6).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은 다 믿더라”(행 13:48).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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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영생으로의 선택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일반적이고 불확정적인 선택과 특정하고 확정적인 선택이 있다. 또한 후자에는 불완전하며 철회될 수 있고 확정적이지 않으며 조건적인 선택이 있고, 또 완전하며 철회될 수 없고 확정적이며 무조건적인 선택이 있다. 이와 비슷하게, 믿도록 택하심이 하나 있고 구원받도록 택하심이 또 있다. 그래서 구원받는 확정적 선택은 아니지만 의롭다 하는 믿음을 주시는 선택이 있을 수 있다.

논박: 이것은 사람 마음의 망상이 성경과 상관없이 꾀를 낸 것이며, 선택의 교리를 더럽힐 뿐 아니라 구원의 다음 황금 사슬을 끊어 버린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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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성경이 선택 교리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선하신 기쁘심과 뜻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은 택하시고 어떤 사람들은 택하시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모든 조건들(율법의 행위도 포함) 가운데서 또는 모든 사물 가운데서, 그것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믿음의 행동과 믿음의 불완전한 순종을, 구원의 조건을 택하신 것에 있다. 또한 이것을 은혜롭게 그 자체로 완전한 순종으로 봐 주시고 영생의 상급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 주시는 것에 있다.

논박: 이 치명적인 오류는 하나님의 선하신 기쁘심과 그리스도의 공로를 무효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 뿐 아니라, 무익한 질문들을 사용해서 은혜로 주시는 의롭다 하심의 진리와 성경의 단순함에서 사람들을 미혹해 내며, 또한 사도의 다음 선포를 거짓이라고 송사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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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믿음으로 선택 받으려면 선수 조건으로서 사람이 본성의 빛을 바르게 사용할 뿐 아니라 경건하고 겸손하고 온유하며 영생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하며 선택은 이런 것들에 어느 정도 의존한다.

논박: 이 주장은 펠라기우스의 냄새를 풍기며, 다음과 같이 기록한 사도의 가르침을 거짓이라 고소하는 것이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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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특정한 사람들이 구원받도록 불완전하며 불확정하게 택하심은, 이제 막 시작하거나 한동안 지속된 미리 내다본 믿음, 회심, 거룩, 경건 때문에 이루어진다. 하지만 완전하고 확정적인 선택은 믿음, 회심, 거룩, 경건 안에서 끝까지 인내한 미리 내다본 견인 때문에 이루어진다. 더욱이 이것들은 은혜롭고 복음적인 가치를 가지며 이 덕분에 선택된 사람은 선택받지 못한 사람보다 더 가치가 있다. 따라서 믿음, 믿음의 순종, 거룩, 경건과 인내는 영광에 들어가도록 불변하게 택하심의 열매나 효과가 아니라, 완전히 택함 받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조건과 원인들이며 그들 안에서 하나님께서 미리 내다보신 것이다.

논박: 이것은 성경 전체를 거슬러 싸우는 것이다. 성경은 반복해서 다음을 가르친다. 선택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는다.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롬 9:11).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요 15: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롬 11:6).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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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구원받도록 택하심이 모두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택하신 자들 중 어떤 이들은 멸망할 수 있으며 실제로 진정 멸망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멸망을 막기로 작정하지 않으셨다.

논박: 이 역겨운 오류는 하나님을 변하시는 분으로 만들고, 자신들이 받은 택하심의 견고함에서 경건한 이들이 얻는 위로를 파괴할 뿐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거스른다. 성경은 택하신 이들이 미혹될 수 없고(마 24:24 참고), 아버지께서 그리스도께 주신 자 중에 하나도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리시지 않을 것이며(요 6:39 참고),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고 가르친다(롬 8:30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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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이 세상에서는 변할 수 있고 불확실한 조건에 의존하는 것 말고는 영광에 들어가도록 불변하게 택하심에 대한 어떤 열매도 자각도 확실함도 없다.

논박: 불확실한 확실성을 말하는 것이 모순일 뿐 아니라, 성도들의 경험과도 반대된다. 성도들은 자신들이 택함 받았음을 자각함으로 사도와 함께 기뻐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한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권면을 따라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자신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한다(눅 10:20 참고). 마지막으로, 성도들은 다음과 같이 질문하며 택함 받았음을 자각하는 것을 방패삼아 마귀의 모든 유혹의 불화살을 소멸한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롬 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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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분의 의로우신 뜻에서, 어떤 사람을 아담의 타락과 공통된 죄와 정죄의 상태에 남겨 두기로 결정하시지 않았으며, 또한 어떤 사람에게 믿음과 회심에 필요한 은혜를 주시지 않고 지나치기로 결정하시지도 않았다.

논박: 이 주장에 대해 다음 말씀들이 확고히 서 있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8). 또한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 13:11). 비슷하게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나태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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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하나님께서 복음을 어떤 민족에게는 보내시고 어떤 민족에게는 보내시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민족이 복음을 받지 못한 다른 민족보다 낫고 가치 있기 때문이다.

논박: 모세는 이 주장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거부한다.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은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신 10:14-15).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도 말씀하시기를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마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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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교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이를 통한 인간의 구속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자비로우실 뿐 아니라 또한 지극히 공의로우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는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대로) 그분의 무한하신 위엄에 거슬러 범한 우리의 죄들을, 현세와 내세에, 몸과 영혼에, 반드시 형벌로 벌할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지 않고서는 우리는 이러한 형벌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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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그 만족을 이룰 수 없으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져 낼 능력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무한하신 자비로 자기의 독생자를 우리의 보증으로 주셔서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시고,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은 바 되게 하사,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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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들의 이 죽으심은 죄에 대한 유일하며 지극히 완전한 희생제사이자 만족이며 그 값을 헤아릴 수 없이 귀하여, 온 세상의 죄를 속하기에 넘치도록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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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죽으심이 무한한 가치와 능력을 갖는 이유는, 죽으신 분이 참되고 완전히 거룩하신 사람일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성부와 성령과 함께 동일하게 영원하시며 무한하신 본질이시기 때문으로, 이 자격들이 그분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으며, 또한 그 죽으심에서 우리 죄들로 인하여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겪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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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desmsekss 것이 복음의 약속이다. 이 약속은 회개하고 믿으라는 명령과 더불어 모든 민족과 모든 사람들에게, 즉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하신 기쁘심을 따라 복음을 보내시는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차별없이 전파되고 선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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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복음으로 부르심 받은 사람들 중 많은 이가 회개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 믿지 않음 가운데 멸망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드리신 희생제사에 흠이 있거나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며,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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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참되게 믿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죄와 멸망에서 해방되고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이 은택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에게 주신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은혜를 어느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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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성부 하나님의 지극히 주권적이신 계획과, 지극히 은혜로우신 뜻과 의도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즉 그분 아들의 지극히 보배로우신 죽으심이 가지신 살리시며 구원하시는 효력이 모든 택하신 자에게 이르게 하시어, 오직 그들에게만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이 믿음으로 그들을 확실히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영원 전에 성부께서 구원받도록 택하셔서 자신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을, 그리고 오직 그들만을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이 피로 새 언약을 확증하심), 모든 백성과 족속과 나라와 방언 가운데서, 효과적으로 구속하시는 것,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믿음을 (그리스도께서는 이 믿음을, 성령님의 모든 구원의 은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죽으심으로 그들을 위하여 값 주고 사심.) 주시는 것, 자신의 피로 그들을 모든 죄, 원죄와 자범죄 모두, 믿기 전과 후에 범한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것, 그리고 그들을 끝까지 신실하게 지키셔서, 마침내 아무런 흠 없고 점 없이 영광스럽게 자기 앞에 세우시는 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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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하신 자를 향한 영원한 사랑에서 나오는 이 계획은,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힘있게 이루어졌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음부의 권세는 그것에 헛되이 대항할 뿐이다. 그리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때가 되면 모여 하나가 되고, 믿는 자들로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피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는 늘 있을 것이다. 이 교회는 신랑으로서 신부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목숨을 버리신 그들의 구원자 그리스도를 늘 견고히 사랑하고 신실하게 섬기며 여기서 그리고 영원하도록 즐거이 찬송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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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논박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이를 통한 인간의 구속에 대한 참된 교리를 설명한 총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는 이들의 오류를 거부한다.

오류: 성부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들을 구원하실 특정하고 확정된 작정 없이 그분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으시도록 정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얻으신 것의 필요성과 유익함과 가치는, 이 얻으신 구속이 실제로 단 한 사람에게도 적용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모든 부분이 완전하고 완벽하며 온전하게 남았을 것이다.

논박: 이 교리는 성부 하나님의 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멸시할 뿐 아니라 성경을 거스른다. 우리 구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나는 그들을 알며”(요 10:15, 27).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구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사 53:10). 끝으로 이 주장은 교회에 대해 우리가 믿는 바를 고백하는 신경을 거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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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목적은 그분의 피로 새 은혜 언약을 확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성부를 위해 사람과 다시 한 번 언약을, 그것이 은혜 언약이든 행위 언약이든, 세우실 권리만을 얻는 것이었다.

논박: 이 주장은 성경을 거슬러 싸운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더 좋은 언약 즉 새언약의 보증과 중보가 되셨으며(히 7:22), 유언은 죽음으로만 효력이 발생한다고 가르친다(히 9:1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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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만족하게 하심으로 어떤 이를 위해서도 구원 그 자체나 믿음(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구원에 이르는 만족하게 하심이 효과적으로 자신의 소유가 됨.)을 공로로 얻으신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부를 위해 인간과 다시 간계를 맺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대로 새로운 조건을 세우실 권리나 완전한 뜻만을 공로로 얻으신 것이다. 하지만 이 조건들에 순종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으며 따라서 아무도 이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고 모든 사람이 충족시킬 수도 있다.

논박: 이 주장을 하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너무도 저급하게 생각하며,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얻으신 지극히 중요한 열매와 은택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지옥에서 펠라기우스의 오류를 다시 꺼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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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성부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중보로 사람과 맺으신 새 은혜 언약은,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공로를 받아들임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받는다는 것에 있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시던 것을 철회하고 믿음 자체와 믿음의 순종을 비록 불완전함에도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으로 여기시고 이것이 영생을 상급으로 답을 만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은혜로이 여기시는 것에 있다.

논박: 이 주장들은 성경을 거스른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4-25). 또한 이 주장들은, 불경건한 소시누스가 모든 교회의 일치된 고백에 대항하여 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에 대한 이전에 없던 괴상한 교리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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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모든 사람이 화목의 상태와 언약의 은혜 안으로 받아들여지며, 따라서 어느 누구도 원죄로 인하여 정죄 받을 법적 책임이 없으며, 원죄 때문에 정죄 받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원죄의 죄책에서 해방되었다.

논박: 이 견해는 우리가 본성상 진노의 자녀라는 성경의 가르침과 충돌한다(엠 2:3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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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하나님으로서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얻으신 은택들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시길 원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죄사함과 영생을 받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받지 못한다. 이는 그들이 자유의지를 사용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지(이 자유의지가 차별 없이 제안된 은혜를 자신에게 적용한다.) 그들 안에 자비의 특별한 은사가 강력하게 작용해서 그들이 다른 이들과 달리 이 은혜를 자신의 소유로 삼는 것이 아니다.

논박: 이 주장을 하는 이들은 구원을 획득하는 것과 적용하는 것의 구별을 오용함으로 현명하지 못하고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혼동하게 한다. 그들은 건전한 의미에서 이 구별을 제안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에게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의 죽음의 독을 먹이려고 애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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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고 영생으로 선택하신 사람들을 위해 죽을 수도, 죽을 필요도 없었고 실제로 그들을 위해 죽지도 않으셨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논박: 이는 다음과 같이 선포하는 사도를 거스른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갈 2:20). 비슷하게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그들을 위해)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롬 8:33-34). 그리고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구주를 거스른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5).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사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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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넷째 교리

인간의 부패와 하나님께로 회심과 그 회심이 일어나는 방식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 하나님께서 그의 총명은 창조주와 영적인 일들에 대한 참되고 건전한 지식으로, 그의 마음과 뜻은 정직으로, 그이 모든 심정은 순수로 단장해 주셨다. 참으로 전인이 거룩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마귀에게 유혹을 받고, 의지의 자유를 오용함으로, 하나님께 반역하여 이 뛰어난 은사들을 자신이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대신 자신의 총명에는 눈 멂과 끔찍한 어둠과 허망함과 어그러진 판단을, 자신의 마음과 뜻에는 악함과 패역함과 완고함을, 자신의 심정에는 더러움을 스스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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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 후 사람은 자기의 모양과 같은 자녀를 낳았다. 즉, 부패한 조상이 부패한 후손을 낳았다. 이런 이유로, 오직 그리스도만을 제외하고, 아담의 모든 후손은 그에게서 나온 부패함을 받는다. 이것은 옛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 주장한 것과 같은 모방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따라, 악한 본성이 유전됨으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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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모든 사람이 죄악 중에서 잉태되며, 본질상 진노의 자녀다. 구원의 선을 행할 능력이 없으며, 악으로 기울어져 있고, 죄 가운데 죽었으며, 죄의 노예다. 그리고 사람은 성령님의 거듭나게 하시는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께로 돌아오거나, 부패한 본성을 개혁하거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개혁하시도록 내어 드릴 능력이 없으며 그것들을 원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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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에게는 타락 후에도 본성의 빛이 희미하게 남아 있어, 하나님과 자연의 사물들과 선과 악의 차이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갖고 있으며, 덕과 외적 질서에 열의를 약간 표한다. 하지만 결코, 이 본성의 빛은 사람을 하나님께 대한 구원의 지식과 참된 회심으로 이끌지 못한다. 심지어 사람은 이 본성의 빛을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일들에조차 바르게 사용하지 못한다. 게다가 이 빛을 여러 방법으로 완전히 오염시키고 불의로 막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께 핑계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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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의 빛에 대한 이 진실은, 하나님께서 모세의 손으로 그분의 소유된 백성인 유대인들에게 주신 십계명의 율법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비록 이 율법이 죄가 지극히 큼을 드러내고, 그로 인해 사람을 더더욱 책망하지만, 결코 사람에게 살 길을 알려 주거나 비참에서 빠져나올 힘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율법은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죄인을 저주 아래 남겨 둔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율법으로는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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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의 빛이나 율법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역사로 행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메시아에 관한 기쁜 소식인 화목하게 하는 말씀 또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통하여 행하시며, 이 메시아의 복음으로 새 언약뿐 아니라 옛 언약 아래에서 모두,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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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뜻의 비밀을, 하나님께서 옛 언약 아래에서는 오직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드러내셨다. (여러 민족 사이의 구별을 폐하신) 새 언약 아래에서, 하나님께서는 민족들 사이의 구별 없이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나티내셨다. 이 경륜의 원인은 한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더 우수하거나 본성의 빛을 더 잘 사용해서가 아니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기쁘신 뜻과 우리 공로 없이 값없이 주시는 사랑의 결과이다. 따라서 그토록 위대하고 은혜로운 복을,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과 정반대로, 하나님께 받은 사람들은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은혜를 알고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은혜를 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심판의 준엄하심과 공의로우심을 마땅히 사도와 함께 찬송해야 하며, 호기심으로 캐내려 해서는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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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복음으로 부르심 받은 사람들은 모두 진실하게 부르심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기쁘게 여기시는 것을 가장 진실하고 참되게 그분의 말씀에서 선포하셨다. 즉 부르심을 받은 모든 이들이 이 청함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그분께로 나아와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혼의 안식과 영생을 진지하게 약속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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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사역을 통해 부르심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와 회심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복음이나, 복음이 제안하는 그리스도나, 사람들을 복음으로 부르시고 다양한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다. 잘못은 그 사람들에게 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 중 어떤 이들은, 자신의 위험은 생각하지 않고, 생명의 말씀을 거부한다. 어떤 이들은 비록 생명의 말씀을 받되, 그 말씀이 마음에 지속적으로 심기지 못하게 하기에, 오직 일시적 믿음에서 나오는 그들의 기쁨은 곧 사라지고 그들은 배반한다. 어떤 이들은 세상의 염려와 즐거움의 가시떨기가 그 씨앗의 기운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을 우리 구원자께서 씨 뿌리는 비유로 가르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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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복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나아와 회심하는데 이것의 원인을 사람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교만한 펠라기우스 이단이 주장하듯) 사람이 자유의지를 적절히 사용해서, 믿고 회심하기에 충분한 은혜를 동등하게 부여받은 사람들 가운데서, 자신을 스스로 구별해 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원인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 전에 선택하셔서, 시간 안에서 효과적으로 그들을 부르시고, 믿음과 회개를 부여하시며, 흑암의 권세에게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이는 그들을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다. 또한 이는 그들 자신을 자랑하게 함이 아니라 사도들이 여러 곳에서 증언한 바대로 주 안에서 자랑하게 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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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 기쁘신 뜻을 택하신 자 안에서 이루실 때, 즉 참된 회심을 그들 안에서 역사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외적으로 그들에게 설교되도록 보살피시고, 그분의 성령으로 권능 있게 그들의 총명을 밝히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바르게 이해하고 분별하게 하신다. 또한 중생하게 하시는 그 영의 효력 있는 역사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가장 갚은 속까지 침투하여, 닫힌 마음을 여시고,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며, 할례 받지 못한 마음에 할례를 베푸신다. 또한 새로운 자질을 의지에 주입하셔서, 죽어 있던 의지를 살아 있게, 악하던 의지를 선하게, 꺼려 하던 의지를 자원하게, 완악하던 의지를 양순하게 하신다. 그리고 의지를 움직이시고 강하게 하셔서 그 의지가 좋은 나무처럼 선행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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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성경에서 그토록 높이 찬양하는 중생이며, 새로 지으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살리심이라 부르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도움 없이 우리 안에서 이 역사를 행하신다. 이것은 결코 복음의 외적 부르심이나, 도덕적 설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그분의 역할을 하시고 난 이후에, 중생할지 중생하지 않을지, 회심할지 회심하지 않을지가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도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명백히 초자연적인 일이며, 가장 강력하고, 동시에 가장 기쁘며, 기이하며, 신비하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역이다. (이 사역을 행하시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에 다르면 중생은 그 능력에 있어 창조나 죽은 자의 부활보다 작거나 열등하지 않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이런 기이한 일을 행하신 모든 사람은 분명, 틀림없이, 효과적으로 중생하며, 확실히 실제로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새로워진 의지는, 하나님께서 움직이고 영향을 미치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향을 미치신 결과로, 그 자체가 활동적이 된다. 이런 이유로 사람 자신이, 그가 받은 은혜로 인하여, 믿고 회개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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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이 사역을 행하시는 방식을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들의 구주를 마음으로 믿고 사랑함을 알고 경험하는 것에 신자들은 만족하며 안식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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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단지 사람에게 제안하신 뒤 받을지 거절할지는 사람의 의지에 맡기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실제로 믿음을 수여하시고, 불어넣으시고, 주입하시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믿을 능력을 수여하신 뒤, 사람의 의지가 믿기로 동의하거나 믿는 행동을 하길 기다리시는 의미에서 선물도 아니다. 오히려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며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믿으려는 의지와 믿는 행동을 둘 다 사람 안에 만드시는 의미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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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이 은혜를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으신다. 주께 먼저 드려 갚으심을 받을 만한 것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빚지시겠는가? 자신의 것이라고는 죄와 거짓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진정 무엇을 빚지시겠는가? 그러므로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원한 감사를 빚지며, 영원히 감사드린다. 반면에 이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 영적인 것들에 전혀 관심이 없으며,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고, 거짓 안정 속에서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헛되이 자랑한다. 나아가 겉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행실을 고치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사도들의 예를 따라, 가장 호의적인 방법으로 판단하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의 깊은 마음속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하지만 결코 우리가 자신을 스스로 남달리 구별한 것처럼 교만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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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이 타락 뒤에도 여전히 총명과 의지를 받은 사람인 것처럼, 온 인류에 퍼진 죄가 사람에게서 사람의 본성을 박탈한 것은 아니며 그에게 부패와 영적 죽음을 가져다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중생의 은혜 또한 사람을 돌이나 나무처럼 대하여 사람의 의지와 의지의 특성들을 빼앗거나 꺼리는 의지를 강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지를 영적으로 살리시고, 치료하시고, 교훈하시고, 즐거우면서도 강력하게 구부리신다. 그리하여 이전에 육신의 반역과 저항이 완전히 다스리던 곳에, 성령님께서 주시는 진심 어린 기꺼운 순종이 다스리기 시작하는데, 여기에 우리 의지의 참되고 영적인 새롭게 됨과 자유가 있다. 따라서 모든 선의 경이로우신 창조주께서 우리 안에서 이렇게 역사하지 않으시면, 바르게 서 있던 자신을 자유의지로 스스로 파멸에 던져 넣었던 사람에겐, 그 자유의지로는 타락에서 일어설 소망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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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 육의 생명을 낳으시고 붙드시는 전능하신 일을 행하실 때 방편 없이 하지 아니하시고 방편을 사용하시며, 그분의 무한하신 지혜와 선하심을 따라 이 방편을 통해 그분의 권능을 행하시기로 뜻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앞에서 말한 우리를 중생하게 하시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행하실 때도 결코 복음의 사용을 제외하거나 무너뜨리지 않으신다. 지극히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을 중생의 씨와 영혼의 음식으로 세우셨다. 이런 이유로 사도들과 그들을 이은 교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모든 교만을 낮추기 위해, 백성에게 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건히 가르쳤다. 그러함에 있어, 복음의 거룩한 교훈들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을 말씀, 성례, 권징의 시행 아래 두기를 저버리지 않았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나 가르침을 받는 자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하신 기쁘심으로 짝지으시려 하신 것을 나눔으로 하나님을 감히 시험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권면을 통해 은혜를 주시고, 우리가 우리 의무를 더욱 기꺼이 행할수록 이 하나님의 은택이 더욱 분명히 우리 안에서 빛을 발하여, 그분의 사역이 더욱 곧게 전진하기 때문이다. 방편들과 방편들의 구원하는 열매와 효과로 인하여 모든 영광이 오직 하나님께만 영원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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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논박

인간의 부패와 하나님께로 회심에 대한 참된 교리를 설명한 총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는 이들의 오류를 거부한다.

오류: 정당하게 말하면, 원죄 그 자체로는 온 인류를 정죄하거나 이 세상에서 그리고 영원히 형벌을 받아 마땅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다.

논박: 이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 사도를 거스른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비슷하게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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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선함, 거룩함, 의로움과 같은 영적 은사들과 선한 자질들과 덕성들은 사람이 처음 지음 받았을 때 사람의 의지에 속했던 것일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이 타락으로 사람에게서 분리되었을 수 없다.

논박: 이 주장은 사도가 에베소서 4장 24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묘사에 거슬러 싸운다. 사도는 하나님의 형상은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며 이것들은 의심할 바 없이 의지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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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영적으로 죽었을 때 영적 은사들은 사람의 의지에서 분리되지 않았다. 의지 자체는 부패했을 수 없고, 다만 총명의 어둠과 감정의 무질서 때문에 의지가 방해받을 뿐이다. 만약 이 방해들이 사라지면, 의지는 타고난 능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으며, 의지 자체가 그 앞에 보이는 모든 선한 것들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을 수 있으며,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논박: 이 새로 고안해 낸 주장은 오류이며 자유의지의 능력을 높이려 하는데, 이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선언을 거스른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 또한 사도의 선언을 거스른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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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중생하지 않은 사람이 완전히 실제로 죄 가운데 죽어 있거나 어떤 영적 선을 행할 모든 능력을 잃은 것은 아니다. 그는 생명과 의에 대해 주리고 목말라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통회하고 상한 심령의 제사를 드릴 능력이 있다.

논박: 이 주장들은 성경의 명백한 증거들을 거스른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엡 2:1), “허물로 죽은 우리”(5절).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창 6:5).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더욱이 비참에서 건지심을 받아 생명을 얻기를 주리며 목말라하고 상한 심령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오직 복 있는 자라 불리는 중생한 사람들만의 고유한 특징이다(시 51:19; 마 5: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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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부패한 자연인이 일반 은총(아르미니우스주의자는 이 용어로 본성의 빛을 말함.)이나 타락 이후에도 남겨진 은사들을 아주 잘 사용할 수 있으며, 이를 선하게 사용함으로 더 큰 은혜 즉 복음적 은혜 또는 구원의 은혜와 구원 자체를 점진적으로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편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내실 준비를 하고 계시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회심에 필요한 방편들을 충분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다.

논박: 모든 세대에 걸친 경험뿐 아니라 바로 성경은 이 주장이 거짓이라고 증거한다.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그는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들은 그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도다”(시 147:19-20).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행 14:1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바울과 동료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행 1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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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사람이 참되게 회심할 때 하나님께서 새로운 자질이나 능력이나 은사들을 사람의 의지에 주입하실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을 통하여 처음 회심하고 믿음 때문에 신자들이라고 불리울 때 그 믿음은 하나님이 주입하시는 자질이나 은사가 아니라, 사람의 행위이다. 그리고 이 믿음을 획득하는 능력에 관한 것이 아닌 한, 믿음을 은사라고 말할 수 없다.

논박: 이 주장은 성경을 거스른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믿음, 순종,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과 같은 새로운 자질을 주입하신다고 선포한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렘 31:3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사 44:3).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 이 주장은 또한 교회가 선지자와 함께 계속 기도해 온 바와도 반대된다.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렘 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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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우리를 하나님께로 회심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부드러운 조언이다. (다른 이들이 설명한 대로) 이런 조언의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사람을 회심시키시는 가장 고귀한 방법이며 인간의 본성과 가장 잘 맞는다. 또한 도덕적으로 설득하는 은혜만으로 자연인을 영적을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조언하시는 방식을 통하지 않고서는 의지가 동의하도록 만드시지 않는다. 사탄의 일을 이기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능력은,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선을 약속하시고 사탄은 일시적인 선을 약속하는 것에 있다.

논박: 이것은 전적으로 펠라기우스주의며 성경 전체를 거스른다. 성경은 사람의 회심에 있어서 설득뿐 아니라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더더욱 강력하며 오직 신적인 방식을 가르친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의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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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하나님께서 사람을 회심하게 하실 때 전능하신 능력으로 인간의 의지를 실패 없이 꺾으셔서 믿고 회개하도록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회심시키실 때 사용하시는 모든 은혜의 사역을 행하셨고 사람의 중생을 계획하시고 원하시더라도 사람은 하나님과 성령님께 저항 할 수 있으며 종종 그렇게 저항해서 자신에게 중생이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중생할지 안 할지는 인간의 능력에 달렸다.

논박: 이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가 회심할 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은혜의 능력을 전부 부인하는 것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인간의 뜻 아래 굴복시키는 것이다. 또한 다음과 같이 가르치는 사도를 거스른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은 우리”(엡 1:19). 사도는 우리 하나님께서 모든 그분의 선하시고 기쁘신 뜻과 믿음의 역사를 우리 안에서 능력으로 이루어 주시길 기도한다(살후 1:11 참고). 비슷하게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벧후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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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은혜와 자유의지는 부분 원인들로 이 둘이 합력해서 회심을 시작하며, 이 원인들의 순서에 있어서 은혜는 의지의 발휘를 앞서지 않는다. 사람의 의지가 움직여서 회심하기로 마음먹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의지를 능력 있게 도와 회심에 이르게 하시지 않는다.

논박: 고대 교회가 아주 옛날에 이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의 오류를 사도의 말을 따라 정죄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전 4:7)?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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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교리

성도의 견인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획을 따라, 그분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통 안으로 부르시고, 성령님으로 중생하게 하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또한 죄의 권세와 종노릇에서 건져 내신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죄의 몸과 육신의 연약함에서 완전히 건지시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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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매일 연약함의 죄가 샘솟고, 성도의 최선의 행위에도 흠이 있다. 이것들은 신자들로 하여금 늘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께로 피하여 가며, 기도의 영과 거룩한 경건의 연단으로 육신을 더더욱 죽이고, 마침내 이 사망의 몸에서 건지심을 받고 천국에서 하나님의 어린양과 더불어 왕 노릇 할 때까지, 온전함의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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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재하는 죄의 잔재와 세상과 사탄의 유혹 때문에, 회심한 사람들은 자신의 힘에 남겨진다면 이 은혜 안에 계속 굳게 서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미쁘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한 번 주신 은혜 안에서 자비로이 확증하시고 그 은혜 안에서 끝까지 권능으로 지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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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자를 은혜의 상태에 굳게 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육신이 이기지 못하지만, 회심한 사람들이 늘 그렇게 하나님께 인도하심을 받고 감동하게 하심을 입어 어떤 특정 행동에 있어 자신의 잘못으로 은혜의 인도하심에서 벗어나 육신의 정욕에 미혹되거나 굴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쉬지 말고 깨어 기도해야 한다. 이를 행하지 않으면, 그들은 육신과 세상과 사탄의 유혹을 받아 심각하고 끔찍한 죄를 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때때로 하나님의 의로우신 허락하심에 의해 실제로 유혹에 이끌린다. 성경에 기록된 다윗, 베드로, 그리고 다른 성도들의 슬픈 실족이 이것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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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그런 큰 죄들은, 하나님을 매우 크게 불쾌하시게 하며, 죽음의 죄책(감)을 지며, 성령님을 근심하시게 하고, 믿음의 발휘를 한동안 가로막고, 그들의 양심을 심히 상하게 하며, 때로 하나님의 은혜를 한동안 느끼지 못하게 하는데, 이는 그들이 간절한 회개로 바른길로 돌아가고, 하나님께서 다시 그 아버지 같은신 얼굴을 그들에게 비취실 때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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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비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변하지 않으시는 선택의 계획을 따라, 자기 백성에게서, 심지어 그들이 근심스럽게 실족할 때에도, 자신의 성령을 완전히 거두지 않으신다. 또한 양자 됨의 은혜와 의롭다 하심의 상태를 잃거나, 사망에 이르는 죄와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고, 하나님께 완전히 버리심 받거나 자신들을 영원한 멸망에 스스로 던져 넣을 만큼 그들이 깊이 떨어지게 하지도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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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이러한 실족 가운데서도 먼저 하나님께서 그분의 썩지 아니할 씨(이 씨에서 그들이 중생했음.)가 사라지거나 완전히 떨어지지 않도록 보존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의 말씀과 성령으로 확실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그들을 회개하도록 새롭게 하셔서, 자신들이 범한 죄들을 마음으로 경건히 슬퍼하게 하시며, 믿음으로 또한 중심에 통회함으로 중보자의 피 안에서 죄사함을 구하고 또한 얻게 하시며, 화목하게 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경험하고, 믿음으로 그분의 자비를 찬송하고, 따라서 그때부터 더욱 부지런히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들의 구원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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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그들이 믿음과 은혜에서 완전히 떨어지거나, 실족 가운데 계속 남아 결국에 멸망하지는 않는 것은, 그들 자신의 공로나 힘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자비에서 나온다. 그들 자신에 대해서는 이것이 쉽게 일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의심할 바 없이 일어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이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이 변할 수 없으며, 그분의 약속이 깨어질 수 없고,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이 취소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와 보전하심이 폐하여질 수 없고, 성령의 인 치심이 허사가 되거나 소멸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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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으로 보전하시고 참 신자들이 믿음 안에서 인내할 것을 신자들은 확신할 수 있고, 또 자기 믿음의 분량을 따라 실제로 확신한다. 이 믿음으로 그들은 자신이 지금뿐 아니라 늘 교회의 참되고 살아 있는 지체로 남을 것과, 죄 용서와 영생을 가지고 있음을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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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거스르거나 무관한 사사로운 계시로 생기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에서 생겨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위로를 위해 그 약속들은 그분의 말씀 안에 지극히 풍성하게 나타내셨다. 또한 이 확신은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상속자인 것을 증언하시는 성령님의 증거에서 생겨난다(롬 8:16-17).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절하고 거룩하게 선한 양심과 선한 일을 사모함에서 생겨난다.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견고한 위로와, 영원한 영광에 대한 틀림없는 보증을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이 세상에서 갖지 못한다면, 그들은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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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성경은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온갖 육신의 의심들과 맞서 싸워야 하며, 큰 유혹들 속에서 이 믿음의 충만한 확신과 견인의 확실함을 늘 느끼지는 못한다고 증거한다. 하지만 모든 위로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은 내사 그들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전 10:13). 그리고 성령님으로 그들 안에 견인의 확실함을 새롭게 되살려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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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견인의 확실함은 결코 참 신자를 교만하거나 육신의 안일함에 빠지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겸손, 자녀로서의 경외감, 참된 경건, 모든 싸움 가운데 인내, 불붙는 기도, 굳건히 십자가를 지고 진리를 고백함, 견고히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함의 참된 원천이다. 더욱이, 이 은택을 묵상하는 것은 참 신자들을 항상 간절히 감사하고 선을 행하게 자극한다. 이것은 성경의 증거들과 성도들의 예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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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되살아난 견인의 확신이, 실족에서 새로이 세워 주심을 입은 사람들을, 방탕하거나 경건을 무시하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이 더욱 세심히 주의를 기울여 여호와의 도를 지키게 한다. 그 길로 행하는 이들이 자신의 견인을 계속 확신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것으로, 그들은 이 도를 행한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자애로운 인자하심을 오용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혜로운 얼굴(이를 바라봄은 경건한 자에게는 생명보다 더 달며 이를 가리시면 사망보다 더 쓰다.)을 자신에게서 돌리시고 그 결과 더 큰 영혼의 아픔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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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복음 설교로 이 은혜의 사역을 우리 안에 시작하시기를 기뻐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읽음으로, 그것을 묵상함으로, 말씀의 권고들과, 위협들과, 약속들로, 그리고 성례의 사용으로 그 은혜의 사역을 유지하시고, 이어 가시고, 완성하시기를 또한 기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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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이 참 신자와 성도의 견인과 그것의 확신 교리를 그분 이름의 영광과 경건한 영혼의 위로를 위하여 그분의 말씀 안에 지극히 풍성하게 계시하셨으며, 신실한 자의 마음에 새기신다. 사탄은 이것을 혐오하고, 세상은 비웃으며, 무지한 자와 위선자는 오용하고, 오류의 영들은 공격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신부는 이 교리를 값을 매길 수 없는 보화로 늘 가장 달콤하게 사랑하고 꾸준하게 방어해 왔다. 그리고 어떤 계략도 통하지 않고 어떤 힘도 이길 수 없는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반드시 끝까지 계속 그렇게 행하도록 하실 것이다. 이제, 이와 같으신 한 분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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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논박

견인에 대한 참된 교리를 설명한 총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는 이들의 오류를 거부한다.

오류: 참 신자의 견인은 선택의 열매가 아니며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얻으신 하나님의 선물도 아니다. 이것은 새 언약의 조건이며, 이 조건을 사람이 소위 확정적인 선택과 의롭다 하심 이전에 자유의지를 사용해 이루어야만 한다.

논박: 성경이 참 신자의 견인은 선택에서 나오며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중보하심의 덕으로 택하신 자에게 주어진다고 증거한다.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롬 11:7). 또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 8: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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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만약 사람이 자신의 의무를 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신자에게 넉넉히 인내할 힘을 주시고 이 힘을 그들 안에 계속 보존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 하지만 믿음 안에서 인내하는데 필요한 것들과 하나님께서 믿음을 보존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것들이 모두 갖추어졌더라도, 여전히 인내할지 안 할지는 항상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

논박: 이 견해는 노골적인 펠라기우스주의다. 이것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려는 의도가 있지만, 사실은 그를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자로 만든다. 이 견해는 자랑할 모든 근거를 사람에게서 빼앗아 이 은택을 인하여 모든 찬송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돌리는, 복음적 교리의 보편적 일치를 거스른다. 이 견해는 또한 사도의 다음 선포도 거스른다.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가지 견고하게”(거전 1:8) 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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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중생한 참 신자들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 믿음에서뿐 아니라 구원과 은혜에서도 완전히 끝까지 떨어지는 것이 가능할뿐더러, 실제로 그 은혜들에서 종종 떨어져서 영원히 멸망한다.

논박: 이 견해는 의롭다 하심과 중생하게 하심과 그리스도의 계속 보전하심의 은혜를 무효하게 하며 사도 바울의 명백한 말을 거스른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롬 5:8-9). 이는 또 사도 요한도 거스른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9). 이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도 거스른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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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중생한 참된 신자도 사망에 이르는 죄나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지을 수 있다.

논박: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5장 16-17절에서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자들을 말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한 뒤, 바로 이어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그러한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18절)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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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특별한 계시 없이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앞으로 인내하리란 어떤 확실함도 가질 수 없다.

논박: 이 교리는 참된 신자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확고한 위로를 도적질할 뿐 아니라 교황주의자들의 의심을 다시금 교회로 끌어들인다. 하지만 성경은 늘 특별하고 유별난 계시에서 견인의 확신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가진 표지와 하나님의 변함 없으신 약속에서 얻는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특히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고 외쳤으며, 요한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고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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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견인과 구원의 확신 교리는 그 본성과 특성에 있어 거짓 안도감의 원인이며 경건과 선한 행실과 기도와 기타 경건의 훈련에 해가 된다. 오히려 이것을 의심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논박: 이 주장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일하심의 권능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또한 사도 요한이 분명히 말한 바를 거스른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또한 신구약 성도들의 예들이 이 주장이 거짓임을 드러낸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견인과 구원을 확신했음에도 한결같이 기도와 경건의 훈련에 계속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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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일시적으로 믿는 이들의 믿음은 의롭다 하심을 얻고 구원받는 믿음과 그 기간만 빼고는 다르지 않다.

논박: 그리스도께서 친히 마태복음 13장 20절, 누가복음 8장 13절, 그리고 다른 여러 곳에서 확실히 가르치시길, 오직 일시적으로만 믿는 이들과 참된 신자들은 단지 기간에서뿐 아니라 세 가지 면에서 다르다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일시적으로만 믿는 사람들은 씨를 돌밭에 받지만 참된 신자는 좋은 땅인 좋은 마음에 받고, 전자는 뿌리가 없지만 후자는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으며, 전자는 열매를 맺지 아니하지만 후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한결같이 신실하게 열매를 맺는다고 가르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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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처음 중생을 잃은 뒤 다시 심지어 종종 거듭난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논박: 이 주장은 하나님의 썩지 아니할 씨(이 씨에서 우리가 중생함.) 교리를 부인하며 사도 베드로의 증거를 거스른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벧전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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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그리스도께서는 어디에서도 신자들이 믿음 안에서 인내하기를 기도하신 적이 없다.

논박: 이 주장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거스른다. “그러나 내가 너(베드로)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눅 22:32). 또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위해 기도하셨을 뿐 아니라 사도들의 말을 듣고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 역시 기도하셨다고 증거한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요 17:11),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5절, 참고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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